top of page

​탁작가 작업노트

감정적 글이 다수이며 정돈 된 노트는 아님  2010-2023​

TAK 노트

2010. 00. 00_ [감정선 시리즈]

우리가 보는 것들 느끼는 것들은 모두 부분이다. 삶을 통제하고 모든 걸 스스로 이루어 나가며 주도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는 것이 아닌 내가 아닌 시선들로 둘러져 있다. 그 시선들이 날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시선은 늘 뿌옇게만 투영되며 그러한 집합들은 기억이라는 것으로 기록되어간다. 그 기억은 단지 기억으로만 인식되어 있을 뿐 그 모든 것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지나간 시간에 바래 진 기억들은 늘 또 다른 기억으로 되풀이된다. 개인 은 늘 외롭다. 그래서 혼자 살수만은 없다는 걸 사람들은 안다. 그 속에는 많은 것들이 헝클어져 있으며 가능한 잊어버리기 위해 선택적 기억만을 기록하며 이루지 못하는 그 어떠한 것을 위해 꿈꾸고 바라며 현실이 되길 바라지만 그것 역시 완전하지 않다. 순간과 영혼은 함께 할 수 없다. 내 작업에 주된 것들은 반복 또는 반복적인 선 매끈한 질감 선명하지 않은 색체 그리고 기억이다. 언젠가부터 거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명확하거나 선명하거나 하는 것들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2010. 00. 00_ [푸른 기억]

나에게 가능한 모든 선과 근거리에 있는 모든 가능성

나에 작업에 있어서 시작은 흐린 한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존재하지 않은 기억 과 낯선 이미지

난 그곳을 가보지 않았다.

그 안에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둔한 기억과 결핍과 눈과 가슴에 대한 것들이다.

어릴 적 그 어떤 곳을 가는 것도 그 무언가를 보는 것도 무서웠던 아이 숨기는 게 익숙하고 드러내길 두려워했던 아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명확하지 않은 기억과 그 속에 스며든 그 무언 가들로 채워 나가고 다시 지워 나간다.

흐릿하고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숨기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

그저 푸른색은 모호함 이란 것을 덧붙이기에 딱히 색깔이다. 그렇다 여전히 숨기는 게 익숙하다.

흐릿하고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숨기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

내가 그리는 그 모든 인간도 나무도 저 하찮은 잡초 한 뿌리도 그저 기억일 뿐이다.

 

2011. 00. 00_ [다시 새김]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그저 살아있기만 해도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두고 보기만 하기에도 아름다운 꽃들이지만 감성의 중간자라고 스스로 칭하는 작가는 나름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다시 그린다. 허무할 만큼 아니 필요치 않은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간에 작업에 대한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치 만개한 꽃들이 시들기 직전의 찰나를 담기 위해 행위의 결과물인 사진위에 작가는 생명의 끝을 보이기 위해 인공적인 노이즈를 작은 점 하나 하나에 의지하며 그리며 지워 나간다. 순간과 영원은 함께 일수 없다.

 

2011. 04. 20_ [집착]

집착이란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은 삐뚤게만 바라보는 지름길이다. 미술이란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곳에서는 불가능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갈수 없는 신세계이며 그 곳에서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고 모든 걸 이룰 수 있다. 그 어떤 곳에도 가능한 나만의 세상이다...

 

2011. 05. 12_ [감각적치유]

나는 매일 공상한다. 어쩌면 경험한 것들 보았던 것들 순간 지나친 것들 다소 불편해 보이는 것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나는 여전히 재현하고 끌어들이고 가린다. 얼마나 솔직하게 보일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언어가 있고 미가 있으며 나름에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존재를 지울 순 없어도 보여줄 수는 있다. 너무 가려진 것들이 많아서 내가 해 놓고도 모르게 됐다.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조금 다르게 해보자.

 

2011. 05. 14_ [가상세계]

나는 그곳을 가보지 않았다. 나는 그가 혹은 그녀가 누 군지 모른다.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이 떠나지 않는 기억에 고리는 왜 항상 돌아오는가? 존재하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다시 새겨지고 가려지고 오직 선으로만 이루어진 이 세계는 화면 속에서만 존재한다.

최소한에 재료에 의미는 모든 것을 언제든 무에 상태로 돌리기 위함이다.

여기에만 이세계가 있고 이외에 모든 세계는 모든 게 허구다.

2012. 10 .04_ [자기소개]

어린시절 조용하고 멍한 눈동자를 가진 아이, 같은 공간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고 누군가 질문을 하면 반대로 말하거나 거짓으로 일관한 …어쩌면 아직도 나는 그런 사람 일지도 모른다.

 

2013. 11. 04_ [메모 씨]

어디에서 왔을까? 그 사람은 누구인가? 무엇을 하려 나타났나? 이 물음을 가진 채 새로운 형태의 인물이 등장했다. 그것도 이전의 그림 보다 더 모호한 표현으로 낯선 방법으로...작가 본인의 작업 영역에서 조금은 다양한 이야기를 할여나 보다. 메모씨는 우리시대의 궁극의 아이콘이며 작가의 오마쥬 이기도 하며 그 반대이기도 하다. 메모씨는 한 개인이 아닌 사람 또는 누구라도 메모씨가 될 수 있다. 어느 한 사건이나 사회적인 모습은 작가 자신이다. 이전 작업의 가려지고 숨고 시선을 피했던 본인의 작업에 화면을 마주하는 시선과 함께 일련의 작업의 단락을 짖고 다시 돌아왔다.

 

2020. 09. 24_ [메모 씨 추가]

어디에서 왔을까? 그는 누구인가? 그는 메모로 얼굴을 가린 메모씨라 불린다.

계속 기억해야만 하는 강박적인 메모씨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해 숨고 싶어한다... 자신의 세계에서만 살고자 하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다. 메모씨는 한 명을 지칭하지 않는다. 보는 이도 그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2014. 01. 01_ [벽]

길을 잃었어요. “제발 도와 주실래요”? 전 거의 모든 게 다 헷갈려요.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죠.

나만 빼고 모두들 전부에 대해 전부터 다 알고 있는 거 같아요.  –닥터후中

 

2014. 02. 26_ [관념의 저편에서]

대상의 형체는 달라지기 일쑤이다. 기억하는 것 기억나는 것 그 공간의 숨소리 ……. 찰나로는 부족하다. 어차피 사라질 것들. 텅 빈 캔버스가 아닌 투명한 유리에 나의 행위를 더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상은 흐려지고 본질은 변질된다. 그것이 기억이 가지는 정의이다. 어찌 보일까 지나간 현상은 어찌 느껴질까 지나간 현상은…….그 모습이 어떠하든 우리는 기억을 한다. 지나갈 수도 지나칠 수도 어쩌면 잊을 수도 없는 우리의 기억은 저 멀리 지나만 간다. 잡으려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세상 만물의 근원의 나침반은 결국 자신을 가리킨다. 결국엔 돌고 돌아도 지나칠 수 없는 우리의 관념적인 삶의 부분일 뿐이다. 이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기엔 너무나 과분하다.

 

​2014. 06. 02_ [보이지 않는]

역시나 지금도 감추고 싶은가 보다.

위의 현재작업들을 함축적으로 정의하면 더 이상 부서질 수 없는 우리 그들과의 관 계속 모호함에 대한 나의 정의는 아름답다. 이것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사실인 것들이다.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당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2014. 06. 29_ [고스트]

내가 그곳에 있어도 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그건 마치 어디론 가 가기 위해 쌓인 물건들처럼 말이야.

누구도 말 할 수없고 말못하는 석상과 같이 점점 변해가는 것 같다.

되 내이고 추억할 기억도 잊어야 하는 아픔도 이젠 더 이상 필요 없어져...

관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어느 구석에 덩그러니 있어.

나를 만지거나 보려 하면 점점 더 나는 사라져...

나는 겨우 숨쉴 뿐이야. 너의 근처에서

내모습은 명확하지 않아 난 진짜가 아니야.

 

2014. 12. 16_ [비어 있지만]

비어 있는 공간의 물음 언젠가 채워질 것 같은 미지의 공간.

현대인들의 절삭된 감정이 두렵다.

보고 있음에 미소 짓지 않고 보고 있음에 눈물 흘리지 않고 지키려고 바빠 감정을 담지 못한다.

나의 연작은 어린 날 통한 재 기억을 통해 답습된 작업의 출발이었다.

그렇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글로 부는 바람을 말로 소리를 가슴속에 담고 싶다.

언제나 모호하 나의 감정이 나는 좋기만 하다.

오늘도 말한다. 나에게 약속한다. 비록 비어 있지만 조금만 기다려줘...

 

2015.07.23_ [유리(遊離)되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홀로 옥상 텐트에서 살며 숨기를 좋아하고 하늘의 달과 별을 올려다보기를 좋아하며 나는 때때로 팔다리가 잘려 보기도 하였다. 나는 아프지 않기 위해 촉감 좋은 판 위에 매일 상처를 옮겨 놓는다.

 

​2017. 02. 20_ [상처]

검은색 타자기를 하나 얻었다.

그 타자기로 한자 글을 쓴다.

한여름 안개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아스팔트 도로 위를 지나갈 때마다 걷히는 안개는

차갑기만 하다.

내 몸 속에는 유리파편이 남아있다.

큰 것들은 칼로 도려내어 빼낼 수 있다.

작은 것들은 내 뼈와 피 속에 고착되거나 점착되었다.

그 보다 작은 것들은 내 혈액을 타고 심장 쪽으로 흘러간다.

지금도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당신이 가질 크고 뼈아픈 상처를 메우고 치료하려는 나의 행위는 끝이 날 이유가 없다.

 

2017. 11. 23_ [텅 빈]

하나, 사각 둘, 사각사각 칼날이 몸에 베인다. 혈관이 찢긴다. 굳어진다.

차갑다. 그런데 좋다. 사각사각 촉감 좋은 판에 칼은 얇지만 자유롭지 못하다.

얇기만 해서 더 크게 상처를 낼 수도 또 치유해 줄 수도 없다.

하고 하고 또 하여도 공허함은 계속 커져 나를 집어삼킨다.

어느 날은 알 수 없는 냄새가 난다. 이게 무슨 냄새……. 지? 기름 냄새 플라스틱 냄새 약간의 사람냄새.

눈물이 난다. 이유가 없다. 아……. 음악소리다.

좋은 음악인데 눈물이 난다. 그 음악소리 안에도 소리가 난다. 물컹한 소리가 냄새와 함께 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걸까? 정신이 몽롱하다. 방안 가득 또렷한 것이 하나도 없다. 앉아있어도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아 참 세상은 원래 도는 거다. 무언가를 잡고 싶다. 그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잡고 싶다. 그런데 잡을 수가 없다. 내가 잡으려 하는 것이 나쁜 것들이면 어쩌지?

그만 생각하자 견디기가 힘들다. 다시 잠들 수 있겠지. 어제도 그랬으니까.

 

2017.12.27_ [물음]

당신은 보이면 무엇이던 믿을 수 있는가?

(시각)

어떤 이미지를 보는가?

이미지는 중요한 것인가?

색은 무엇이며 보이는 것이 다인가?

그 대상은 누구이며 무엇인가?

왜 그것이여야 만하는가?

단 한순간이라도 거짓을 그리거나 만들진 않았는가?

행위나 도구들이 캔버스에 점착되었는가?

혹 고착되진 않았는가?

그 생각과 감정들은 바뀌지 않는가?

아니 일부러 붙잡고 있는 건 아닌가?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나?

나는 아름다움을 정확히 판단하는가?

그것 또한 명확한가?

명확하게 보이려 의도하여 흐리진 않았는가?

나는 아름다운 가?

나는 순수한가?

나의 행위는 정당한가?

다른 것들이 침투되거나 침범하려 한적은 없는가?

행위의 목적이 있는가?

그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 역시 보여주기 만을 위해 다르게 보이려 한 것은 아닌가?

내가 하는 행위는 보는 이에게 감정이 전달되는가?

그것은 행복과 관련이 있는가?

행복만이 좋은 것인가?

나는 행복한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상상하는가?

노력은 시간에 비례하는가? 그 시간이 깊이와 비견되시었는가?

물음이란 당연한 것인가?

삶이 다하면 무엇이든 정지되는가?

나는 내가 하는 여행을 멈출 수 있는가?

 

2018. 03. 29

사람이 있는 어둡고 깊은 곳에 돌을 던지면 자신이 던진 돌은 금방 사라진다. 망각은 무섭다.

 

2018. 03. 31

나는 닦아내며 긁어 내고 있습니다.

이 캔버스는 비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납작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세계는 무한한 것들과 맞닿아 있으며 그 세계는 조금 슬픕니다. (나는 때때로...)

이것은 내 감정들이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긁어 내고 지우려해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떠한 것들은 점이 되어야 사라지기도 하나 봅니다. 매일 마주하는 캔버스에 나는 오롯이 내가 되고 싶습니다.

 

2018. 04. 12_ [잠식]

몽롱한 세계에서 눈은 흐리 멍 텅 해져만 간다. 온갖 가진 모든 힘을 쥐어짜내며 흐트러지지 않으려 힘주며 버티지만 날카로운 창 끝 날 서린 칼은 이내 내 몸속에 깊게 파고들어온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수없이 덮어둔 상처더미가 무색해질만큼... 나는 계속 그렇게만 쌓여 져간다.

 

2018. 04. 26

1. 기억하는 모든 걸 잊으려 하거나 벌써 다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2.네가 보고 가진 것 모두 진짜야?

3.설마 모든 게 영원할 것 같아?

 

2018. 05. 06_ [자기소개2]

헛것이 자주 보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사실인 것 같았던 투영된 거울 그 끝에는 늘 내가 없다.

땅거미 짙은 가을 하늘이 좋다.

모퉁이 돌아 만나는 낯선 사람과의 잠깐의 동행이 나는 지금도 좋다

어제 꿈속에서 함께한 그녀와의 키스도 새롭기만 하다

나의 몸속에는 오래전 몸속에 자리한 칼날 하나가 있다.

너는 나에게 오래된 칼날 하나를 쥐여주며 말했다.

그냥 너에게 솔직히 말한 것뿐인데?!

그 칼을 쥐고 오늘도 참 많이 그었다.

나의 오늘은 어제의 너와 같다.

 

2018.07.10

떠나지 않는 기억이 있다. 외면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 차곡차곡 쌓인 것들의 무게는 나를 떠나갈 줄을 모른다.

 

2018. 07. 10

빛이 없어도 외롭지 않다. 나의 그늘도 너와 닮았다. 무게는 더해지지만 무겁지 않다. 오늘도 눈물이 난다.

눈물이 흐른다. 마를 새 없이 흐른다.

 

2018.12.6

슬픔을 보다.

어둠을 걷히며

눈물의 길이

눈물이 가진 빛

눈물이 멈추는 시간

눈물샘

마른 가지

눈물길

감정은 어디에

자의식의 폐허

텅 빈 풍경

연기와 불꽃뿐

구겨지고 부서진

불온한 그대에게 빛을

 

2019. 02. 13

검은 안개

 

2019. 05. 22

어디 있는지 모른다.

 

2019. 08.16

나는 귀뚜라미다.

한껏 몸을 웅크리고 살다가 작은 기척에

피하지도 못하는 나는 귀뚜라미다.

항상 낮은 숨을 내뱉는...

그저 빛이 없는 밤이 되고 미약한 작은 불빛만이 존재할 때 비로소 나는 있는 힘껏

숨을 쉰다.

 

2019. 08. 17_ [NONE]

그림 제목을 “NONE“이라 썼다. 최근 2년 사이에 변화된 그림이기에 지금도 변모하고 있다.

누군가는 머리카락 누군가는 리본 누군가는 연장될 것 같은 끈으로 보기도 한다.

그림을 닦아만 내거나 또는 긁어서 표현하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한다.

캔버스에 밑 칠을 하고 전면을 유화물감으로 덮는다. 휘발성을 가지고 있는 용액을 붓이나 손으로 닦아내면 물 자국처럼 흔적이 남는데 그 대로 두거나, 이후 바늘 하나를 가지고 긁어낸다. 그러다 보면 먼저 지나간 붓 자국과 나중에 지나간 붓 자국이 차이를 두며 밑 칠한 색이 드러나는데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부분이 가장 좋다.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비워내는 과정이고 그 이전에도 이런 행위를 많이 했던 터라 지금 하는 작업에 꼭 맞는 거 같아서 내 행위가 그림 속에서 정당한 것 같기만 하다. 그러고 싶기도 했고…더 이상 긁히지 않을 때 즈음 그림의 방향이 결정된다. 바늘을 쓰는 이유는 긁기에 적합하기도 하고 본래 바늘은 옷감을 지을 때 쓰는 도구이기도 한데 날카로 와서 피부에 닿으면 따끔거리기도 한 게 나는 마음에 든다.

 

2019. 09. 21

여긴 상처 줄 사람도 없고 안전하지. 이곳은

 

2019. 09. 27

나는 무어가를 그리는 동시에 지위 나가며 반복하고 완전히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그렇게만 보이길 원한다.

 

2019. 10. 21

우리는 닿으려 해도 닿을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

 

2019.10. 27

모든 것이 부서질 것 같지만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으면 좋겠어.

 

2020. 00. 00

눈물을 훔치듯이 캔버스를 손으로 닦는다. 짙은 어둠이고 오래된 바탕의 색은 사람이기도 하고 텅 비어 있는 무한한 시간이 집적된 것이다. 나의 도구는 내 손이며 붓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손길이다. 한없이 휘저어도 허공일 뿐 닦아낸 자리는 금세

또 지워져 내려가 또 다른 것들을 만든다. 빛 바랜 곳에 반짝이는 빛들은 한없이 덧 된 눈물 덩어리 와 같다.

보는 이의 마음에 각인된 감정의 덩어리들은 이내 산처럼 쌓여 가거나 더 이상 씻겨 내려갈 수 없을 만큼

흘러 나가기도 하며 생각지도 못한 다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손으로 행하지만 몸이 움직이고 마음을 정수 시켜 나의 그림은 그렇게

멈춘다. 적어도 내 그림 안에서

 

2020. 02. 15

표면균열

 

2020. 03. 23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 카본가루를 미디엄에 섞어가는데 다 풀어질 때까지 붓질을 한다. 계속 하다 보니 두께의 경계밖에 없더라 계속 이어지는 모습이 좋아 붕대라고 제목을 지었다.

 

2020. 05. 00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그 어떤 지난 것에 눈과 마음을 담지 않으며 가지 도구로 호흡에 따라 결을 만들어 내며 그것은 겹쳐진 선이 되고 겹치고 겹쳐져 구멍 난 가슴에 상처를 바늘로 꿰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상처를 메우는 것, 나의 상처를 너의 상처를

 

2020.07.10_ [재]

공허한 상태의 나의 마음은 예쁘게 꿰매어 질 줄을 모른다. 최근 만들어진 ash(잿더미)연작은 텅 빈 나에 그림을 채울 수 있을까? 작업에 변화는 나에게 늘 떨림과 불안을 동시에 가져가준다.

처음 시작은 지금까지 와 마찬가지로 반복을 통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아직 재료를 다루는 모습이나 작업에 과정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아 또 여러 번 캔버스는 찢겨 나간다.

 

카본 가루는 더 이상 탈내야 탈수 없는 재료이다. 작업을 할 때에 모든 재료에 의미를 붙이진 않으나 이번 그림은 내 상태와 너무 맞닿아 있어 더욱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검은색을 낼 떼 도료와 안료의 원 재료가 되기도 한다. 나름에 방법으로 재료를 다지고 만들어 내는 과정은 작업에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한 재료들을 캔버스 한 화면에 켜켜이 쌓아 헛손질로 채워진 캔버스는 여전히 끝이 없는 구멍처럼 느껴진다. 계속해서 쌓다가 보면 붕대로 감을 수도 없는 부풀어진 상태의 흉터 처 럼 보인다. 여전히 나는 캔버스를 피부와 사람처럼 느낀다. 어떤 것을 아주 오랜 시간 마주하다 보면 그렇게 되기도 하고 내 모든 작업의 시작이며 근간이 된다. 매순간 처음 마주한 하얀 캔버스는 낯선 이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떨리고 시선 간곳없는 하얀 캔버스는 완벽하고 아름 다우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젯소로 여러 번 칠해주고 미세한 사포로 갈아주고 정성을 다해주고 만져준다.

그 위에 칠해진 카본가루는 미디엄과 섞어 지나간 자리는 손에 지문처럼 화상입은 피부처럼 갈라진 땅처럼 그렇게 쌓여간다.

지나가는 연필자국은 조형성의 구분선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다른 세계의 통로로서 역할을 한다.

 

지금도 그림을 대할 때 똑같은 걸 물어본다. 넌 어디가 그렇게 아파? 너도 지금껏 많이 상처받았나? 이제 내가 치료도 못해주지만 더 이상 벌어지거나 덧나지 않게 잘 메워 줄게 미안해

 

2020. 11. 0_ [당신이 멈추는 순간]

여기에 어둠이 있다.

그곳이 무섭게 보이는 건 당신이 칠흑 같은 곳에서 헛손질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짙고 가려져 흉터와 뾰족한 칼날마저 가려져버린다.

이곳에 빛이 있다.

그곳이 미약한 밝음에도 당신이 아름답게 보는 건, 당신 마음속에 온전히 자리잡은 촛불이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빛은 항상 당신의 길을 비춘다.

꺼져가는 등불에 두려워 말라.

곧 다시금 활활 타오를 테니...

세상 아름답게 머무는 곳은 나에 것이고 당신의 것이다.

 

2021_ [VANISH]

어둠 속에 내가 있다. 손을 휘 저어 느껴본다. 마치 바람이라도 느껴지는 듯이

정신이 몽롱 하다. 눈 앞이 흐려져 그 어떤 것도 구분 지어 지질 못한다. 가까이 잡으려 손을 뻗는다. 무언가 잡힐 듯하다. 힘껏 가는 눈을 뜨면서 힘껏 뻗어 본다.

내가 잡으려 하는 것은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구나. 잘 짜인 캔버스위에 검정색 유화물감과 흑연가루를 이용하여, 작품 전면에 펴 바른다. 어떠한 때에는 큰 붓으로 몇 시간동안 붓질하여 그대로 두거나 붓질 외에 부분을 긁고 닦아내어 구분 지으려 하기도 한다. 겹겹이 켜켜이 쌓인 그림은 평면이긴 하나 좌, 우를 돌려 보면 빛에 의해 형태가 달라보아는 환영적인 요소가 있으며 이는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얀 캔버스가 검정색으로 채워져 있지만 작가는 텅 비어 있다고 말한다. 본래 작가의 붓질은 붕대와 같았고 캔버스는 사람이라 칭하였었다. 모든 이를 위함이 아닌 자신의 치유 방법이었고 작가의 제목은 변화가 있으나 그 주제에는 변함이 없다.

 

2022. 04. 11_ [정화]

처음엔 무모한 짓이라 생각했다.

나 스스로 나 만을 위해 만들어 놓은 그것으로 생각했다.

어두운 방구석, 잠시 내뱉는 내 숨소리도 가슴 졸이며 뱉아내었다.

나는 둔하다 둔한 사람이라 무언가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 내 눈은 항상 멀어지고 손끝 촉감만이 나를 느끼게 했다.

온전히 나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비 오는 날에 온몸을 빗속에 던져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지금도 때때로 그렇게 한다.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 역시 기분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펼친 그림들은 카본 가루와 흑연, 유화물감 등이 주재료가 된다.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놓고 가루들을 오랜 시간 게워 물감을 만든다. 그 시간에 동안 나 역시 재(ash)가 된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것처럼 말이다.

불에 그슬려 타다가 남은 재는 한동안 그림 제목이 되기도 하였다. 연기와 불꽃이 사라진 가루들을 다시금 쓸모가 있게 만들어 펴 바르면 나에겐 꽤 의미가 있는 재료가 된다.

 

물감을 펴서 바른 후에 커다란 붓을 들고 몸이 움직여 그림이 된다. 많은 것들을 담고 싶지만, 반복된 나의 행위는 헛손질에 지나지 않는다.

긴 시간 반복된 행위 속에서 그림을 이리저리 돌려 보면 보기 좋은 구도가 이루어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나를 감싸 안으려는 붕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붕대의 형상은 드러나기도 사라지기도 하지만 당신의 상처를 메워질 붕대가 되길 바란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드러난 선이나, 점들은 아름다운 장식이 아닌 흉터이자, 홍반이다. 지나간 것들이 어떠 한들, 반복된 행위는 생명이 다한 것을 게워 만져지고 정화되며 붓질 표면의 깨끗한 눈부신 피부는 정수 되어 이처럼 새롭게 발현된다. 다시금 새겨진 모든 것들이 나의 그림 들이다.

나의 위로와 당신의 위로를 향해 소망하며 나는 불을 보고 물에 몸을 던지며 반복한다.

 

2023.01.04_ [제목 있음]

이전 작업에서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변화만 생각했다. 지금 진행중인 그림들이 마음에 든다.

캔버스를 피부삼아 그려낸 그림이다. 세상에 그려진 선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부서진 마음의 결이나 선들이 밑그림이 된다. 그 선들은 오목하게 튀어나와 홍반 처 럼 보이고 한 화면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 자기를 지키려 경계를 만든다. 그것들을 헤아리는 듯 유화물감과 흑연이 섞인 나의 물감들은 마치 연고들로 덧씌워져 그들을 어루만지며 채운다. 그 상태는 너무 명확하고 두드러져 나의 손길과 같은 붓으로 더 멋진 결을 이루며 반복하고, 이전의 홍반들은 때어내어 다시금 새 피부를 이루며 더 견고한 아름다운 색으로 채워져 변화한다. 내 그림들은 대부분 평면 회화를 통한 나의 연구가 주제이며, 인간 내면의 상실과 기록을 통한 나만의 기법을 더한 추상화로서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그림 들에는 제목이 있다. 그저 세상에는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들에게도 이름이 있기에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

요즘에도 내 그림들은 나와 더 가까워지고 내 그림들을 닮은 사람들을 본다. 그 들을 만나진 않지만…

 

[나에게 예술이란]

나에게 예술이란, 텅 빈 거리나 숲속에 홀로 눈을 감고 걷다가 헛손질로 느껴지는 것과 같은 감촉...

 

"누구나 감정이 있습니다.그게 어떠한 것이던 이걸 빼놓을 수는 없지요.(마이아츠 인터뷰中)

bottom of page